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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고 깊숙이 있는 걸 꺼내다 성에에 손등을 살짝 긁혀 핏방울이 맺혀 있다. 다급하게 일회용 밴드를 찾는다. 상자를 뒤져 지혈되도록 양 끝을 당겨 감싸고 나니 '대가'라는 단어가 새삼 점착력을 갖는다. 굳이 좁은 틈으로 팔목을 밀어 넣어야 하는 허기가 피를 보는 일, 그것 또한 나를 각오로 내모는 법칙이 아닐까. 그래서 얼굴에 반창고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은 자신을 실컷 패고 나서 발라놓은 것 같더라니.
수만 년 전 빙하기 때 얼음 속에 갇혀 있던 씨앗이 싹을 틔웠다던데. 언제 넣어두었는지도 모를 비닐봉지 속 그 허연 것이 내 식욕을 돋게 할 줄이야. 가끔 밤에 잠을 자다 내가 아닌 무언가가 꿈을 가사 상태로 빠뜨린 뒤 어떤 동기를 심어놓고 간 듯 여겨질 때가 있다. 어쩌면 선택이라는 것도 동면에서 깨어난 먼먼 누군가의 의지인지. 허투루 살고 있는 듯 보여도 피는 못 속인다는 것. 아, 이건 피 본 사람만 안다는 건데.
반투명 밴드 속 선홍빛이 동그랗게 비쳐 검지로 콕콕 눌러본다. 찌릿하면서도 어딘지 야릇한 기분, 상처가 끝내 나를 건드리다가 나 아닌 무언가와 교신하는 듯한 감각. 잠시 눈을 감으면 돌 화살촉이 손등 가운데로 날아와 박힌다. 가죽으로 싸매기 전 동굴 벽에 주술처럼 다섯 손가락을 찍어 벽화를 남긴다.
음- 마아, 아- 흐르
나는 중얼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