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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키만큼 땅을 파 들어가면서 누울 정도로 옆을 튼다. 일주일간 퍼 올린 흙더미는 작년 장마 때 패인 뒤란에 쌓아두었다. 이런 도입부를 생각하면서 산길을 걷는데 굴삭기가 트럭에서 내려지는 게 보인다. 죽음에도 장비가 있다면 삶을 파내고 거기에 어둠을 채우는 게 아닐까. 누군가는 스스로 파 놓은 구덩이에 누워 두 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얹으면 저세상도 다만 낮잠일 뿐이라던데.
자궁 속에서 흙의 촉감대로 몸을 뒤트는 태아가 있다고. 눈을 감고도 나무뿌리와 적당한 습기를 밴 쿰쿰한 냄새가 모성의 편에서 아늑으로 바뀔 때, 우리는 태어나는 것이다. 살다 보면 꿈이 양막 안에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무언가 보호받고 있다는 37.5도 안팎의 렘, 이때만큼은 눈동자가 꺼풀 아래에서 빠르게 몸 밖의 나를 찾아낸다.
한 시간을 걸었더니 한 사람의 몇 년 치 눈물이 티셔츠에 땀으로 젖어 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차 트렁크를 열고 걸터앉아 웃통을 벗고 두 손으로 비틀어 짜 본다, 주르륵. 비만한 나의 영혼을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생의 위아래 끝을 나눠 잡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바싹 꼬면서 트는 것과 같은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옛일이 꿈의 바닥을 적시고 있다.
어릴 적 동네 할아버지는
발인을 마치고
장지에서 하관을 할 때 깨어나
몇 달을 더 살다 가셨다.
그때 관 뚜껑 두드리는 소리,
보닛에서 들린다.
한철 소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