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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호 좌대 낚시터에서 잡은 물고기를 살려서 가져가겠다는 이가 있다. 산소발생기가 달린 커다란 살림통 뚜껑을 열어 보이며 이 정도면 호텔이지, 한다. 물고기를 집에 가져가서 어떡할 거냐고 물었더니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겠단다. 낚아 올렸을 때의 당찬 손맛이 집에 가서도 퍼덕이고 있다는 게 짜릿하다나. 죽은 걸 가져가는 건 찜찜하다고 한다.
언젠가 내가 죽은 뒤 의식이 데이터처럼 이동 중일 때 신의 마음도 그러할까. 생전에 펄떡이던 심장 속으로 수없이 드나들던 감정을 손맛으로 여길까. 사후라는 거대한 살림통에 나를 밀어 넣고 여기는 호텔이야, 일단 기다려 중얼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생각을 부처님과 하나님은 찜찜하다 여기실까. 사실, 찜해 먹을까 싶다는 그이의 말이 뒤늦게 떠올라서.
어쩌면 마음도 과거에서 살려서 가져와 현재에 풀어놓는 건지도 모른다. 망각은 찜찜하고 죽은 과거는 더더욱 징그럽다. 누군가 기억나지 않는 나의 일을 말해줄 때 그에게 낚였다는 기분이 이런 거겠다. 그럴 경우 죽은 듯 잠자코 있어야 그의 입질이 더 이어지지 않는다. 밤이 나를 덥석 물어 꿈에 끌려가는 게 이를테면 무방비의 월척이다. 일어나 보면 허망한 애착들.
내가 이 딴생각에 빠져 있는데
찌가 올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