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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

2026.02.04 14:44

윤성택 조회 수:12

·

이른 아침 맞은편 길가 카페 앞에 웬 삼사십 명이 둘러서 있다. 그 한가운데 보이는 하늘색 자전거 한 대. 조명이 한순간 켜지며 여배우가 문을 열고 나와 올라탄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이겠거니 지나면서 문득, 한 장면에 스태프가 저리 많다니. 사람이 동원된다는 건 어떤 시간이 과거를 재구성하기 위해 벌이는 퍼포먼스인 것인지.

 

한 사람의 운명이 지구의 시간에서 사소한 한 컷이라면 내게 동원된 인연은 또 얼마나 해프닝일까. 지구에서 태어나 죽은 이들은 자신이 겪었던 '사랑'을 후대에 누적시켰다는 걸 알까. 여전히 시청률이 높은 테마로 다양한 감정이 재현되고 배경으로 쓰이는 날들. 배우가 탄 자전거 뒤에서 불러 세우는 남자 배우. 대사는 모두가 알고 있다.


한동안의 극심한 추위도 북극곰이 숨을 거뒀기 때문이고, 시베리아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이 발자국들을 지웠기 때문이다. 모두 동원되었고 관계되었으며 지절하였다. 동파된 어느 아침이 세상을 잠시 멈추게 한다. 이때만큼은 각자 멍해지는 시간. 차창을 보다가도, 상대가 말하고 있는데도, 걷고 있는데도 찾아온다. 아무도 모른다, 이때야말로 제작진이 부산하게 다음 장면에 가 있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라 방영되는 것이라면

아직 끝나지 않은 배역들

각자 앞에 세워둔

하늘색 자전거 한 대

 

조명이 펑,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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