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월이 왔다. 걷다 보면 그늘도 살이 쪄 간다. 추위를 대비해서 볕을 어둠에 불리는 건지, 슬슬 해가 짧아지기에 게을러진 건지 알 수 없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아 하릴없는 허기에 진심인 사람이 되곤 한다. 휴일에 아주 천천히 시간을 따라 놓다 보면 저녁이 몸 안으로 흡수되어 있다.
한 잔의 와인, 한 모금의 시간, 그래서 와인은, 내게 '와 있는' 것이다. 가을볕을 섭취한 단풍나무가 잎들을 적색으로 촉진하듯, 시월이 구월을 거두어들여 신속하게 기억을 처분해 간다. 몇 년 전 일은 쉽게 생각에 물들지만 보름 전의 일은 좀체 가물가물하다. 숙성의 문제인가, 아니면 망각의 기술인가.
이 가을에 취해 위(胃)가 위하는 바대로 펼쳐놓은 시를 읽는다. 눈빛은 행간 사이에서 감(感)을 운반해 와 나만의 성분으로 변환시킨다. 그리고 반응한다. 그리움이 활성 되거나 고독이 과도히 분해되기도 한다. 분명, 이것은 취기다. 모든 독해에는 문장으로 얼근하여진 기운이 있다. 시월은 독서가 사람을 견디는 달이다.
삼차원 시공간에서 내가 관찰할 수 있는 세계는 활자가 쓰인 최초의 시간과 동시에 존재한다. 평생을 살아도 만날 수 없는 사람, 혹은 만나지지 않는 사람은 같은 문장에 눈빛이 닿는 순간, 앞으로의 시공간을 감당할 수 있다. 시간의 축을 무너뜨리며 물질로서의 대면을 가능케 하는 시차의 연대다.
한 권의 시집이 당신을 살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