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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내 안으로 들어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몸이라는 유한성을 차지한 시간은 나의 감정의 범위와 체력의 한계를 사사건건 정해주다가, 언젠가 훌쩍 다른 몸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시간은 생을 빌려 공간에 기생하는 존재다.

 

몇 시까지 그 일을 해야 하고, 또 몇 시까지 거기에 가야 하고, 몇 시가 되기 전에 모두로부터 사라져야 한다. 이런 미션들이 나의 보람을 설계한다. 어쩌면 만족이라는 건 나를 이해하는 시간의 동조일지도 모른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삼단 우산을 가방에 챙기는 게 앞서 일어날 일에 대한 대비라면, 웬지 모를 예감이 가 있는 미래는 준비하는 것인가, 대응하는 것인가. 이런 물음이 가끔 물웅덩이를 무심코 밟게 한다.

 

어릴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 영화, 방망이로 어디든 두드리면 구멍이 생기고 그 안으로 뛰어들어 세계를 구하던 장면이 왜 떠오를까. 비 갠 뒤 웅덩이에 고인 하늘, 그 안은 이 세계와 포개 놓은 다른 시공간인 것만 같아, 한 발로 밟고 다른 발로 밟으며 첨벙첨벙 놀았던 그때가

 

어른이 된 내 발이 되어 웅덩이에서 화들짝 발끝을 떼게 한다. 정말 네가 나를 구한 거니?

 

돌아보니 어느새 여름은 내 것이 아니었고, 폭우가 내리는 우산 속이 나를 주섬주섬 접어 간다. 신발은 조금 젖었고 기억은 조금씩 말라가고 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건물 처마 밑에서 우산을 위아래로 세게 턴다. 그때 딱 세 번, 기회가 수많은 장면을 빌려 쓴다.

 

덥수룩한 시간이 엘리베이터 거울에서 설핏 스쳤다. 나오지 말라고 그랬지! 그런 생각만으로도 장마는 묘하다. 네가 살든 내가 살든, 후련히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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