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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차이로 은행잎이 더 샛노랗고 단풍이 붉다. 십일월의 기색이 확연해, 그 길을 걷는 얼마 동안 나도 일조량을 나눠 쬐게 된다. 햇볕 아래 드러난 민낯. 인상을 쓰고 다녔던 날들이 어떤 성과만 같았던 때도 있었지. 늦가을이 파벌을 이뤄 나무들을 주도하는 거라면, 높게 뜬 구름은 한때 나의 주눅 든 피로를 닮았을까. 공기는 맑은데 탁한 것들만 기억에 다녀간다.
산책을 하면서 늘 가던 데를 벗어나 더 걸어보지 않는 건 왜인지. 시계를 보면서 휴식을 잰다는 생각이 앞서면, 길은 다만 되돌아와야 할 동선일 뿐이라서인지. 아까 샛길로 목줄을 쥐고 사라졌던 사람이 저만치 앞에 와 있을 때, 마음도 지름길이 있는 건 아닐까. 가령, 내가 오해를 앞질러 간다면 거기에 사랑이 서성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과정에서 환승이 보인다, 더 천천히 걸었던가.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이 내장산까지 도달하는 데는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던데, 내게서 출발한 감정은 또 얼마의 시간을 마련해 가며 어느 정감에 닿을까. 나무가 놓아주는 낙엽들, 그것도 다른 나무에게 알리는 타전이라고 생각해 본다.
자작나무 숲을 터전으로 삼은 어느 부족은 낙엽을 고인이 보내는 점지라 불렀다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잎 하나하나가 이승의 누군가가 보내는 안부라 했다. 그래서 그들은 가을날 바람에 날아온 낙엽이 옷자락에 닿으면 그것을 조심스레 품에 넣어 집으로 가져갔다고. 누군가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이 가을, 가장 늦게 떨어지는 낙엽은 깊은 사랑을 품고 있다고 믿어도 될까. 나무가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잎사귀니까. 그래서 그 부족은 첫눈이 내리기 직전까지 가지에 남은 잎을 가장 귀한 부적으로 여겼다지. 그것을 베개 밑에 넣고 자면, 자신이 그리운 이를 꿈에서 만날 수 있었다고.
동화가 가을을 읽어도 시로 이해되는 건 다 일조량 탓이다. 구름이 높게 떴기 때문이다. 무리지은 은행나무가 흩날렸기 때문이다. 산책하다 짖는 개를 또 봤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오래 들여다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