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밤은 왜 가여운가

2025.10.29 14:19

윤성택 조회 수:15

·

해가 지고 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신의 주소를 잃어버린다. 낮 동안 애써 지켜온 장소, 이를테면 우편함 텅 빈 자리, 가로수 위 둥지, 정류장 벤치가 한꺼번에 방향을 잃는다. 낮의 문법이 저녁 여섯 시에 유실되고 밤의 문법이 그 자리를 접수하지만, 밤의 문법은 낮과는 달리 주어를 가지지 않는다. 밤에는 누구의 것도 아닌 불 켜진 창문 하나만이 남는다.

 

밤이 되면 사물들은 자신의 형체를 벗어둔 채 어둠 속으로 해산한다. 낮 동안 탁자였던 것이 밤이 되면 그저 어둠 속의 덩어리가 되고, 의자였던 것이 밤이 되면 누군가의 부재처럼 나사에 종속된다. 낮의 사물들은 밤이 되면 자신이 사물이었다는 사실조차 지워버린다. 밤에는 가구가 없다. 밤에는 도구가 없다. 밤에는 다만 온기만이 있고 무게만이 있고 냄새만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밤이 되면 사람은 낮 동안 불렸던 이름을 내려놓는다. 선생이었던 자가 선생이기를 멈추고, 아버지였던 자가 아버지이기를 멈추며, 노동자였던 자가 노동자이기를 멈춘다. 밤이 되면 사람은 관계의 계보에서 벗어나 다시 날것의 육체로 돌아간다. 낮 동안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상을 애써 유지하던 자가, 밤이 되면 그 상을 지탱하던 자존심을 하나씩 빼버린다. 밤의 육체는 주소 없는 육체다. 밤의 육체는 답장할 곳이 없는 편지처럼 어둠 속을 떠돈다.

 

밤이 가여운 것은 밤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낮이 거부했던 것들이 밤으로 흘러든다. 낮의 빛이 비추지 않았던 얼굴의 구석진 곳들, 낮의 언어가 이름 붙이기를 거부했던 감정의 기형적인 형태들, 낮의 윤리가 용납하지 않았던 욕망의 야생적인 모습들이 모두 밤으로 건너온다. 밤은 낮이 추방한 것들의 피난처다. 밤은 낮이 버린 것들의 수용소다. 밤은 낮의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자들이 몸을 숨기는 사면령의 시간대다.

 

낮이 선택을 요구한다면 밤은 선택을 유보한다. 낮이 결정을 강요한다면 밤은 결정을 늦춘다. 낮이 명료를 덕목으로 삼는다면 밤은 모호를 품는다. 밤은 낮처럼 무언가를 판단하지 않는다. 밤은 다만 무언가를 수용한다. 낮의 시간 동안 배제되었던 것들이 밤의 시간 동안 다시 허락된다. 낮에는 부끄러워해야 했던 것이 밤에는 부끄럽지 않게 되고, 낮에는 감춰야 했던 것이 밤에는 드러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밤이 가여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밤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밤은 낮을 위해 존재한다. 밤은 낮이 다시 올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주는 자다. 밤은 낮이 지친 얼굴을 씻고 새로운 얼굴을 다시 쓸 수 있도록 준비시간을 주는 자다. 밤은 낮의 무대 뒤편에서 낮의 의상을 손질하고 낮의 대사를 복습시키는 자다. 밤은 자신을 낮의 보조자로 여긴다. 밤은 자신을 낮의 하인으로 여긴다.

 

사람들은 잠을 청하지만, 잠은 몸이 아니라 기억의 일이다. 잠들지 못하는 마음이 흘러가 도달한 어둠, 그것이 밤이 꾸는 꿈일 것이다. 별빛이란 오래된 신경의 흔적처럼, 수천 년 전의 죽음을 반사하고 있다. 그 빛을 바라보는 사람은 실은 죽은 이의 잔광을 눈 속으로 들여보는 셈이다. 그렇다면 밤하늘을 보는 행위는 기억과의 교배다. 잊지 못한 것들과의 교섭이다. 나는 가끔, 한 사람의 마음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순간이 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불러도 닿지 못하고, 고요 속에서만 이해에 도달한다. 이해란 결국 언어의 부재로 도달하는 것. 그 부재의 공간에서, 밤은 살아 있다. 그래서 밤은 가여운 동시에 고요한 제국이다. 한 사람의 고통이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통로, 모든 언어가 해체되어 다시 빛으로 돌아가기 전의 좁은 복도. 그곳에서 시간은 단지 숨을 고르고 있다.

 

밤에 자는 것은 낮을 위한 것이다. 밤에 쉬는 것은 낮을 위한 것이다. 밤에 꾸는 꿈조차 낮의 삶을 정리하거나 예비하기 위한 것이다. 밤의 모든 시간은 낮의 시간을 위해 봉사한다. 밤은 낮의 연료가 된다. 밤은 낮의 밑천이 된다. 밤은 낮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낮은 그 몸을 태워 빛을 낸다.

 

그래서 밤은 가여운가. 밤은 언제나 누군가를 위한 시간이지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밤은 언제나 무언가의 준비 단계이지 그 자체로 완성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밤은 언제나 다음을 위해 존재하지 지금을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밤은 자신의 가치를 낮과의 관계 속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밤은 독립할 수 없기 때문에. 밤은 홀로 설 수 없기 때문에.

 

밤의 가여움은 연약해서가 아니고 무능해서도 아니다. 밤의 가여움은 밤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힘을 가졌으면서도, 그 힘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쓸 수 없다는 데 있다. 밤은 낮의 그늘에 가려진 것들을 받아들이는 큰 그릇이지만, 그 그릇은 언제나 낮을 위해 비워져야 한다. 밤은 낮이 흘린 것들을 담는 저수지지만, 그 저수지는 언제나 낮에게 다시 물을 대어줘야 한다.

 

밤에 태어난 것들은 낮을 기다린다. 밤의 육체에서 피어난 말들은 낮의 입술에서 다시 발화되기를 기다린다. 밤의 마음에서 솟아난 감정들은 낮의 얼굴에서 다시 표정이 되기를 기다린다. 밤에 쌓인 것들은 낮에 쓰이기를 기다린다. 밤은 언제나 기다리는 자다. 밤은 언제나 준비하는 자다. 밤은 자신의 차례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준비한다.

 

그러나 어떤 밤은 낮을 거부한다. 어떤 밤은 낮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스스로 아침을 삼켜버린다. 그 밤 속에서 누군가는 잠들지 못한 채 눈을 뜨고 있고, 누군가는 차라리 낮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때 밤은 가여운가, 아니면 낮이 가여운가.

 

그럼에도 밤이 가여운 것은 밤이 헛되기 때문이 아니라, 밤이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밤이 쓸모없기 때문이 아니라, 밤이 지나치게 쓸모 있기 때문이다. 밤이 비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밤이 너무 많은 것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밤은 모든 것을 품지만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밤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만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간직하지 못한다. 밤이 가여운 것은 바로 그래서다.

 

새벽 두 시에 깨어 물 한 컵 마신 뒤 다시 잠을 청할 때

꿈만큼 안되고 마음만큼 처연한 밤이

달빛을 흘리고 있다. 내가 가여운가.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83 일조량 new 2025.11.05 1
» 밤은 왜 가여운가 2025.10.29 15
181 여기는 어디인가 2025.10.22 24
180 생각이 같으면 2025.10.15 25
179 시월이 취한다 2025.10.01 59
178 걱정 말아요, 로 시작되는 2025.09.24 63
177 우중(雨中) 복제 2025.09.17 68
176 모바일 주민등록증 2025.09.10 64
175 좋은 사람 감상 모임 2025.09.03 67
174 혹시 2025.08.27 69
173 진심의 구조 2025.08.20 62
172 완전히 젖지도, 마르지도 못한 채 2025.08.13 69
171 Zorgartneseca (조르가르트니세캬) 2025.08.06 59
170 핑, 2025.07.30 61
169 텀블러 2025.07.23 57
168 젖은 우산은 세 번 털어야 한다 2025.07.16 84
167 상상 2025.07.09 85
166 무더워서 무던하다 2025.07.02 63
165 시간차 2025.06.25 73
164 마음의 안쪽은 어디로 통하는가 2025.06.18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