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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같은 상상을 반복하는 순간, 그 상상은 이미 누군가의 암시가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앞에서 걸어오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뭔가 다녀간 느낌. 구름 속에서 태양이 엉긴 수분을 일일이 헤아리는 것처럼. 폴더에서 다른 폴더로 파일들이 오가는 것처럼. 영혼도 어딘가에서는 서로 전송되는 것은 아니었는지. 미소가 있을 듯 말 듯한 할머니가 스쳐 갔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서로의 꿈을 엿보는 일로 일생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관심은 타인의 무의식에 닿아 불현듯 예감이 되고 끌림이 되어 언젠가 선택으로 드러난다는 것. 산책할 때 오르는 나무 계단 옆에 내 손을 툭 치는 관목의 가지가 있다. 높이가 서로 맞아서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지날 때마다 손으로 따뜻하게 쥐어주고 지나곤 한다. 그러니까 나의 관심은 그 가지에서 꽃을 보는 것이다. 어떤 꽃일까, 진달래일까 하면서, 가지들 중 제일 먼저 필 거라 믿으면서 겨울을 나는 거. 상상은 기어이 꽃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거.
세상의 모든 꽃들이 피어나서 져 내릴 때까지의 수순이 있듯, 나의 매 순간의 선택도 실은 내면의 암시를 따라 어떤 결정으로 향해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말이 운명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운명이 내게 이끌려 정해진 바를 뒤따라올 뿐이다. 몇 시간 후의 따뜻한 커피를 지금 상상으로 맛보듯, 볶은 원두가 갈리기 위해 윤기를 머금고 있다는 것.
양자역학에서 '가능성의 파동'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이 수많은 확률로 겹쳐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선택은 어떤 식으로든 관찰되었을 때 현실이 된다는 말이겠다. 영혼도 에너지이면서 입자의 일종이라면 미시적 관점에서는 목격되는 마음이다. 할머니가 나의 눈을 통해서 본 게 그것이었나. 꽃망울이 꽃을 틔우려 내 손을 건드린 것도 그것이었나. 한 잔의 커피로 내게 오기 위해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고산지대에서 커피콩이 붉어졌었나.
어느 상상이 내게로 와 오늘은 공기가 왠지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