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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는 일에 대하여

2026.02.25 14:43

윤성택 조회 수: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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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가 지났다는 말을 듣고 나는 왜 '우수에 젖는다'라는 문장이 더 내 절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을까. 그 막연한 감성이 고여 있는 텀블러를 기울이다 사전을 찾아본다. 어라, 낭만인 줄만 알았던 우수가 근심과 걱정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니. 커피가 쓰다는 느낌이 순진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초봄의 걱정이 비에 젖으면 불안에 매이지 않고 감미로워지는지.

 

봄은 클리셰다. 결말이 반쯤 정해진 통속극처럼 기어이 꽃은 제 속을 터트린다. 내가 우수를 낭만으로 오해했던 것마냥 애틋한 곡해. 아마도 봄꽃은 오는 중이다. 가지나 줄기의 연한 틈으로 순을 내밀어 응어리진 울음을 신파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젖는다는 건 흘러간다는 것이기에 어딘가로 스미는 향기, 나는 또 어떤 우수로 받아들일지 2월은 짧아서 인터벌이 길다.

 

소리 내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이는 자신의 우수(雨水)를 지난 사람이다. 입춘과 경칩 사이에 낭만이 있는 사람이다. 그 절기는 마음의 황경이 슬픔을 넘어섰을 때에 해당한다. 때로 한 사람에게 젖는다는 건, 뻔한 줄 알면서도 제 속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이겠다. 고백이란 아직 어리숙한 감정의 덩이를 벌어진 말 사이로 내미는 것.

 

우수(雨水)를 지나 우수(憂愁)에 젖어서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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