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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회사를 퇴직한 뒤 구입한 자동차가 멈췄다. 오전에 시동이 잘 걸리지 않고 흰 연기를 뿜어대길래 수리 센터를 찾아갔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단다. 점화가 지연되면서 불완전 연소로 발생한 연기라고 했다. 정비사가 시동을 걸어 보이며 확인해주었다. 그리고 돌아와 주차한 뒤 오후에 일을 보는데 같은 증상이다. 40여 분 동안 차는 매연을 내뿜으면서도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다 데려다주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수리 센터로 갔을 때, 엔진 내부에 오래 전부터 문제가 있었다며 수리비가 상당할 거라고 폐차를 권하는 게 아닌가.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차를 정비소 갓길에 밀어두고 돌아와 의자에 앉았는데 갑자기 울컥, 스포티지가 한 마리 늙은 백마 같다. 처음에 갔을 때 왜 그랬니? 그때부터 이상이 있었잖아. 부동액이 다 타들어 가고 있었는데 왜 괜찮은 척했니. 왜 내가 할 때는 시동이 버거웠는데 정비사 손에는 세 번이나 멀쩡하게 시동이 걸렸니. 흰 연기를 뿜어내면서도 왜 도로에서 서지 않았니. 왜, 모든 일을 마치고 정비소에 가서야 숨을 내려놓은 거니.
폐차보다는 수출입 업체에 차를 넘기는 게 낫겠다고 한다. 스포티지는 외국에서 인기 차종이란다. 선루프까지 있으니 값을 더 쳐줄 거라고. 엔진을 덜어내고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혹은 아프리카에 가서 백마는 새로운 주인을 만날 것이다. 심장은 다르지만 내 운전 습관에 길들여진 대로 액셀을 받아줄 것이다. 트렁크 조임쇠 사이 깊숙이 들어간 오백 원짜리 동전을 간직한 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의 벌판과 산맥 사이를 달리거라. 내가 탄, 탔던 백마야. 언젠가 그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내가 너를 한눈에 알아본다면 나는 내 몸의 나사를 다 풀어 주고 싶겠지. 십 년이 넘게 나와 같이 수많은 길을 다녔으니. 뒤에서 들이받는 차에 받히면서도 우리는 건재했으니. 스탄으로 가거라, 이런 꿈이 자다가 깨었을 때 스쳐 갔다. 고요히 멎은 엔진. 주검 같은 내 차.
살면서 그랬다. 첫눈에 어디서 본 듯한 사람. 불현듯 끌리는 사람.
전생 어딘가에서 심장을 바꿔 낀 영혼은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