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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해다. SF영화 장면 같은 2026년이라니. 1999년 겨울 장항선 통일호 열차 칸에서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작품 <블레이드 러너> 이야기에 몰두했던 우리들. 셋이 마주한 객차 좌석에서 복제 인간이 어떻고 반란이 어떻고 떠들었었지. 그러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차창에서 들녘 위로 떠가는 비행기를 봤던가. 그 강렬한 기억, '먼 미래야, 2019년은.' 그러나 시간은 생활의 리뷰를 8.73점 넘어서며 2025년 마지막 날에 와 있다. 하필 왜 그때가 떠오를까. 셋 중 한 친구는 체온을 공기 중에 나눠주고 사라졌는데.
잠시 검색한 정보 '영화 1993/ SF 미국 118분/ 개봉 1993.05.08./ 평점 8.73'을 생활의 8.73점으로 옮기며 생각해본다. 개봉에서부터 지금까지 영화를 본 이들의 감정이 이와 같은 수치라면, 내 삶에 대하여 미추(美醜)와 선악을 평가하는 무언가 있지는 않을까. 내 일생을 대강 추려내 죽음에 기입할 평점 같은 거. 나를 관람해 간 사람들, 나를 감상의 지표로 삼은 사람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최신순'의 별점들.
영화가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는 거라면, 새해는 365일이라는 숫자를 반복하며 내 몸을 현실에 투사시키는 거겠다. 롱테이크 기법이 아직도 진행 중인 이 삶이라는 몰입감, 내가 나라는 사실이 너무 생생해서 꿈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봐주는 건지. 이 충분한 계획을 마련한 감독은 어쩌면 인류의 체온을 나눠 가진 공기는 아니었는지.
새해가 갑자기 장르를 바꿔서 나를 카메오로 출연시키는 것은 아닐 테지만
눈밭에서 뛰놀던 강아지가 내게 와서 품에 안겼을 때 그 두근대던 온기.
그 따뜻한 기운이 내내 함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