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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데
글이 나를 이해하려 애쓴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는, 나보다 먼저
내 마음을 읽은 문장들을 만나는 중이었다.
맞은편 칸막이 너머
아는 얼굴 같은데,
누구였는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눈이라도 마주쳐서 내가 엉거주춤 일어서야 한다면
그건 뭔가 책임을 떠안는 일 같기도 하고.
그와 나는 서로 너무 많이 안다고 착각할 정도로
모르는 사이일 수 있다.
가령, 일 때문에 급속히 친했다가 잊힌 사람.
오래전 모임에서 2차 가자고 해 놓고 먼저 갔던 사람.
지인의 친구였는지 친구의 지인이었는지
미소만 가물거리는 사람.
아니면, 그냥 꿈에서 나왔던 얼굴.
잠깐.
꿈?
그 순간 나는 꿈에서 알은체한 사람을
현실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 안 되는데 싶었다.
꿈은 여럿을 한 얼굴로 뭉쳐놓고
해몽 따위로 얼버무릴 텐데
나는 그들조차 끝내 몰라서.
어쩌면 그게, 그와 나의 전부라서.
일행 사이에서 듣고만 있는 그
커피잔을 들었다 놓았다가
고개 끄덕이는 각도에서 설핏
아니구나. 잘못 봤나 보다.
결국 이 불안한 심리는 그런 거다.
이유도 맥락도 없이 알 것 같은 사람에 대해
왜인지 자꾸 설명하고 싶어지는 거.
그러면서도 설명은 끝내 안 되는 거.
나는, 굳이
기억나지 않는 이에게조차 오해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나를 몰라봐 줬으면 좋겠는데,
조금 알아봐 줬으면 아, 네, 하며 별일 아닌 척
으쓱할 사람이다.
생각해 보니, 아니 어쩌면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기 위해
너무 많은 의미를 만들어냈다.
의미는 종종 과하고
현실은 때로 그 과함을 모른 척한다.
나는 끝까지 해석되지 않는 얼굴을
한참 동안 뜯어보다가
그게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무슨 뜻이라도 부여해 보고 있다.
그가 대화가 끝난 듯 일행과 카페 밖으로 나갔고
·
,
다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