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수돗물이 새면 공구가 필요해

2026.08.12 14:34

윤성택 조회 수:4

·

약수터에서 물이 새고 있다. '적합 판정'이 코팅된 A4용지가 나무 기둥에 붙어 있는데, 약숫물은 똑, , ... 은빛 쇠컵 속으로 아주 느리게 떨어진다. 마실 수는 있으나 조바심 내서는 도저히 누릴 수 없는 효험이 산비탈에 있다. 산을 거쳐 간 수많은 먹구름이 조금씩 빠져나오는 건지, 운이 좋아 컵에 반쯤 고인 물을 한 모금 두 모금 오물오물 맛깔스럽게 삼킨다. 내 몸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온대저기압, 걱정 마시압! 바로 땀으로 다시 샌다.

 

기억의 틈에서 미래가 새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사과나무가 한 방울의 붉은 능금을 가지에서 맺혀 내듯. 저장했다가 인출하는 생각일수록 그 쓰임이 먼저 행동을 정한다. A에서 B로 새고, 다가올 의지가 의식을 간직하고 있다고. 나는 태어나서 줄곧 새고 있는 사람, 날이 샌 줄도 모르고 꿈을 흘려 받는 이. 신이 반 컵만 남은 내 생을 엎지를지라도. , , ... 누군가 태어나고 또 누군가 죽음에 스며들고.

 

걷다가 '접근 중' 지하철 전광판을 보고 뛴다

에스컬레이터도 씩씩거리며 올라

도착해 자리에 앉고 보니

가방 속 텀블러 뚜껑이 꽉 닫히지 않아

커피가 샜다 이 난감함을

산은 알까

싶다가도 노트북 먼저 꺼내

휴지로 닦고 있는 내가

생활력에게서

적합 판정을 받을 수나 있는지

 

나를 잠시 잠근다

실눈 뜨고

다시.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 수돗물이 새면 공구가 필요해 2026.08.12 4
220 소리의 뒤편 2026.08.05 20
219 여름이 내게 들어와 한 방울로 맺혀 올 때 2026.07.29 28
218 아름다운 공작 2026.07.22 33
217 이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026.07.15 30
216 탈몰입 2026.07.08 46
215 아으 동동(動動) 다리 2026.07.01 44
214 꽃 보듯 마킹 2026.06.24 46
213 한철 살아보기 2026.06.17 41
212 옥타브 2026.06.10 61
211 선풍기 소리 2026.05.27 57
210 누수 2026.05.20 52
209 살려서 가져간다는 것 2026.05.13 54
208 노크 2026.05.06 61
207 성업 중인 2026.04.29 50
206 가방에 뭐가 들었습니까 2026.04.22 61
205 누굴 만나러 간다는 게 2026.04.15 72
204 저린 사람 2026.04.08 60
203 보았던 것도 같다 2026.04.01 62
202 진달래와 산수유는 색이 달라 2026.03.25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