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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에서 물이 새고 있다. '적합 판정'이 코팅된 A4용지가 나무 기둥에 붙어 있는데, 약숫물은 똑, 똑, 똑... 은빛 쇠컵 속으로 아주 느리게 떨어진다. 마실 수는 있으나 조바심 내서는 도저히 누릴 수 없는 효험이 산비탈에 있다. 산을 거쳐 간 수많은 먹구름이 조금씩 빠져나오는 건지, 운이 좋아 컵에 반쯤 고인 물을 한 모금 두 모금 오물오물 맛깔스럽게 삼킨다. 내 몸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온대저기압, 걱정 마시압! 바로 땀으로 다시 샌다.
기억의 틈에서 미래가 새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사과나무가 한 방울의 붉은 능금을 가지에서 맺혀 내듯. 저장했다가 인출하는 생각일수록 그 쓰임이 먼저 행동을 정한다. A에서 B로 새고, 다가올 의지가 의식을 간직하고 있다고. 나는 태어나서 줄곧 새고 있는 사람, 날이 샌 줄도 모르고 꿈을 흘려 받는 이. 신이 반 컵만 남은 내 생을 엎지를지라도. 똑, 똑, 똑... 누군가 태어나고 또 누군가 죽음에 스며들고.
걷다가 '접근 중' 지하철 전광판을 보고 뛴다
에스컬레이터도 씩씩거리며 올라
도착해 자리에 앉고 보니
가방 속 텀블러 뚜껑이 꽉 닫히지 않아
커피가 샜다 이 난감함을
산은 알까
싶다가도 노트북 먼저 꺼내
휴지로 닦고 있는 내가
생활력에게서
적합 판정을 받을 수나 있는지
나를 잠시 잠근다
실눈 뜨고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