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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2003.06.28 00:32
윤
조회 수:174
한동안 점심으로 따로국밥만 먹은 적이 있었다 골목 안의 그 식당은 언제나 조용했다 어린애 하나를 데리
고 언제나 방안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느릿느릿 차려주는 쟁반 밥상을 나는 수배자처럼 은밀히
찾아들어 먹곤 한다 밥을 기다리는 잠시 동안의 그 적요가 왠지 나는 싫지 않았다 한번은 직장동료와 같
이 간 적이 있는데 을씨년스레 식은 드럼통 목로들을 둘러보며 그가 추운 듯 그 적요를 어색해 하는 것을
보곤 이후 죽 혼자만 다녔다 가끔씩 국이 너무 쫄아들어 짜진 것을 빼고는 콘크리트처럼 딱딱한 채 언제
나 적당히 젖어 있던 그 식당의 쓸쓸한 흙바닥까지 나는 사랑하였다 그 식당이 결국 문을 닫고 아이와 함
께 늘 어두운 방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어디론가 떠나가 버린 뒤, 집수리가 시작된 철거현장에서 나
는 어린 딸아이의 끊임없는 웅얼거림과 가끔씩 덮어주듯 나직이 깔리던 젊은 여자의 부드러운 음성이 허
물어져 가는 회벽 사이에서 햇살에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눈이 부셨다
- 골목안 국밥집, 엄원태
그해 겨울
나는 외딴집으로 갔다
발목이 푹푹 빠지도록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어두워지기 전에
외딴집에 가서
눈오는 밤 혼자
창을 발갛게 밝히고
소주나 마실 생각이었다
신발은 질컥거렸고
저녁이 와서
나는 어느 구멍가게에 들렀다
외딴집까지 얼마나 더 걸리겠느냐고
주인에게 물었다
그는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외딴집이 어디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 외딴집, 안도현
...
다만
조용히 귀기울이고 싶을 때가 있다.
복자수도원으로 저녁 산책을 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 이진명의 '복자수도원'에 부쳐...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댓글
1
윤성택
2003.07.01 14:17
3 편의 시로 말하는 것, 그리고 그 시가 공통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서 전하고 싶은 안부들.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장마가 잠시 저 밖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서둘러 자라버린 것도 있을 법할 요즘입니다. 다음에는 비를 꺾어다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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