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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한 봄날

2020.04.23 19:38

윤성택 조회 수:355



이팝나무 아래 건널목에서 전화가 왔다.

하얀 꽃들이 진동음처럼 흔들리고 그 너머 파란 하늘이 액정화면 같았다.

주머니속 스마트폰은 스스로 연결되기 위해 연신 타전 중이었을까.


가끔 알면서도 오는 전화를 내버려둘 때가 있다.

봄꽃들의 행렬이 쌀밥 같은 꽃에 이르면 허한 정신의 춘궁기가 있어서일까.

기기를 쥐면 접속된 번호와 이름,

나눴던 말들까지 고스란히 다운로드돼 생각의 과부하가 온다.


사실 스마트폰은 우리 몸이 외부로 확장한 해마(海馬)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불가능했던 막대한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과 능력을 가졌다.

단순한 기계가 아닌 삶의 반영이며 수단인 셈이다.

지금의 지식은 능력보다 휴대한 기기의 속도에 따라 우열이 나뉘기도 한다.


겨우내 뿌리로 끌어올렸던 꽃이 가지로 드러나듯

봄과 이팝나무는 공진화(共進化)의 관계에 있다.

서로 영향을 주면서 여름으로 나아간다.


스마트폰과 사람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귀에 이어폰 꽂고 액정에 얼굴을 묻은 채

열중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이 둘은 낮이고 밤이고 손 안에 있거나 손 주위에 있다.

길을 걷거나 식사를 할 때 잠자리에 들 때도 내려놓지 못한다.


스마트폰이 SNS 일상생활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 문화 이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소통을 확대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자유로운 의사가 오가고 개방된 정보가 공유되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모색케 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최고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정보가 오가며

인맥의 그물망이 촘촘하게 엮여졌으니까.


와이파이 기호처럼

이팝나무 가로수들이 도로와 도로를 잇고 있듯.


그러나 이러한 스마트한 삶은 자기중심적이며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언제든 로그아웃이 가능하고 어디든 새로운 창으로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편의점 인공 불빛처럼 지극히 인스턴트적이다.


유독 창백한 이팝나무가 거기에 있었던가.

같은 자리에서 도시의 피고 지는 밤낮을 바라보는 일은

봄에게 있어서도 쓸쓸한 메시지다.


우리는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액정으로 눈을 덮어버린,

네트워크에서 벗어나는 순간 세상과 단절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실제 공간에서의 불통이다.


온라인으로 매개된 인연이 대부분 스쳐 지나는 속성을 지닌 것도 한몫한다.

어쩌면 자신이 만든 아이디에 길들여지고 좌지우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일수록 대체할 수 없는 공허와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문자를 보내고 인터넷을 뒤진다.

하루 종일 들여다보아도 지루하지 않는 기능으로

최적화된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가는 것이다.


휘발성으로 떠도는 정보 속에서 영혼은 어디로 접속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는 손 안의 세상보다 손 밖의 세상에 눈을 돌려야할 때다.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곳,

내가 실재하는 공간으로 눈과 귀를 돌려보자.


상대를 바라보며 목소리 톤을 귀로 음미하는 소통은 진실하다.

눈을 바라보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산책을 가는 것.

그곳은 마주한 사람을 이해하고 알려는 배려가 충만한 세상이다.


마음과 마음이 어떠한 매개도 없이 직접 만나는 정()의 공간은

그래서 소중하다. 꾹꾹 눌러오는 햇살에 교신된 이팝꽃의 향기는

현실에서의 청명한 기호들이다.


바람은 희고 길쭉한 꽃잎들을 쥐고 누구를 부르고 싶은지

자꾸만 왼쪽으로 하늘을 쓸어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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