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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붉히다
2003.01.05 22:46
윤
조회 수:198
임하댐 수몰 지구에서 붉은 꽃대가 여럿 올라온 상사화를 캤다 상사화가 구근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놀랍도록 크고 흰 구근을 너덜너덜 상처입히고야 그놈을 집에 가져올 수 있었다 아무도 없었지만 얼굴은 붉어지고 젖은 신문지속 구근의 근심에 마음을 보태었다 깊은 토분을 골라 상사화를 심었어도 아침에 시들한 꽃대를 들여다보면 저녁에는 굳이 외면하고 말았다 여기저기 물어 비료며 살충제며 잔뜩 뿌리고 잔손을 대었지만 상사화의 꽃을 보고자 함은 아니었다 살릴 수만 있다면 꽃은 아주 늦어도 대수롭잖다고 다짐했다 상사화 꽃대가 차례로 시들어갈 때 내 귀가는 늦어졌다 한밤중에 일어나 바깥의 상사화를 들여다보고 한숨쉬는 내 불안을 알아보는 식구는 없었다 나는 꽃필 상사화에 기대어 이제는 물 아래 잠긴 땅으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언젠가 이곳도 물에 잠기리라 결국 내가 시든 줄기를 토분에서 뽑아냈을 때 상사화는 그러나 완전한 구근과 수많은 잔뿌리를 토해내었다 그 아래 두근거리는 둥근 세계가 숨어 있었으니, 시든 꽃대 대신 뾰족한 푸른 잎이 구근과 무거움을 딛고 겨울을 준비하였으니! 내 근심은 겨우 꽃의 지척에만 머물렀던 것이다 나는 얼굴을 붉히고 상사화가 스스로의 꽃대를 말려 죽인 이유를 사람의 말로 중얼거려보았다
... 송재학
...^^*...제 불안을 알아보는 식구는 없었습니다...하하...제 근심이라는게 겨우 그랬습니다...
...
오늘 교보문고에 들러 시집 두권을 구입했습니다...음...정확히 하자면 선물을 받았지만... ...혹시나 했는데...역시 시인님 시도 실려있더군요...시산맥동인 시집 '천마가 날아간 하늘'과 류외향 시집을 샀습니다...
...겨울을 준비할 참입니다...
댓글
1
윤성택
2003.01.06 15:08
어제 저도 오후무렵 교보문고에 갔었는데 그 사막같은 활자더미 어딘가에서 혹 스쳐지났을지도 모르겠군요. 문예잡지 코너와 시집코너, 아마 거기쯤 낙타처럼 모래의 활자를 우직 밟고 있었습니다. 류외향, 좋은 시집입니다. 아마도 제가 먼저 갔었다면 제 손때가 묻은 시집을 사셨겠군요. ^^ 올해 좋은 소식이 함께 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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